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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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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국민일보 오피니언]선배가 일찍 그림을 익혔더라면
Name 2010 Arts Edu Date 2010.06.16 Hit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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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손수호] 선배가 일찍 그림을 익혔더라면

“예술은 풍요로운 삶의 동반자… 유네스코의 ‘서울 어젠다’에 기대 크다”

지난주 한 선배가 정년퇴임식을 했다. 기념패와 꽃다발을 건네고 고별사를 듣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다. 스스로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반주기에 맞춰 색소폰을 연주했다. 이봉조와 케니 지의 음색에는 차마 미치지 못했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불어제낀 노래 ‘봄날은 간다’는 행사장을 한순간 애잔함으로 밀어 넣었다. 그림은 수채화에 머물고 있음에도, 데생력과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예술에 대한 끼가 다분했다.

선배는 농촌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 악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림은 중학 2년 때 미술시간이 마지막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색소폰과 그림을? 자신을 치열하게 재발견하는 수단이었다. 은퇴 이후 긴 시간을 담담하게 맞을 수 있는 열정의 대상이 필요했다. 여기서 궁금증이 일었다. 선배가 좀 더 일찍 예술을 접했으면 어땠을까. 그는 단호히 말했다.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굳이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예술과 동반하는 삶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고 윤택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제는 예술교육이다.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성공한 ‘빌리 엘리어트’의 내용 또한 그러하다. 잉글랜드 북동부 더램 주의 탄광촌에 살고 있는 빌리는 일찍 어머니를 여읜 편부 슬하의 아이다. 또래 소년들이 그렇듯 그도 권투를 배우던 어느 날, 옆 교실에서 진행 중인 발레 레슨에 우연히 끼게 되면서 춤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버지와 형은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격렬히 반대했으나 천재성을 알아본 윌킨슨 선생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마침내 꿈의 로열발레단에 입단한다. 만일 빌리에게 마을의 발레교실이 없었다면? 역시 중요한 것은 예술교육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방과후 레슨이란 게 있다. 그러나 종목만 여러 예술장르를 나열했을 뿐 사실상 노역에 가깝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미술학원과 글쓰기 학원의 순례는 의무교육이나 진배 없다. 아이들의 재능을 찾기 위한 섬세한 배려 없이 성장기 스펙의 하나로 거칠게 다뤄진다.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 쪼가리 하나 타려고 벌이는 다툼은 또 얼마나 비교육적인지. 뒤틀린 예술교육의 단면이다.

어른들은 더하다. 경험이라야 기껏 학예회 수준에 머무는 노장층은 그렇다 쳐도, 피아노 건반이라도 두드려본 젊은층마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예술에서 멀어진다. 도무지 사회 환경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배움의 일선에 나서면 호사가의 여유 쯤으로 바라본다. 더러 “회사 일은 안 하고∼” 어쩌고 하면서 실눈을 뜨기도 한다. 예술세계가 주는 벅찬 즐거움 대신 카바레의 유흥에 빠지고, 미술을 즐기는 대신 그림 투기를 일삼는다.

예술교육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다문화 가정을 통합하는 지름길이다. 출생 배경이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전통을 공유해야 하는데, 여기에 요긴한 도구가 문화예술이다. 사회복귀를 앞둔 재소자들에게는 성찰의 계기를 부여하고 지속적인 자기계발로 이끈다. 지역주민이나 장애인도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하며, 대안학교까지 품어야 한다.

마침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가 오늘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린다. 193개국 2000여명 참가하는 대규모 문화올림픽이다. 2006년 리스본 대회에서 문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확인했다면 이번 대회는 다양한 실천방식을 모색하는 자리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예술교육의 가이드라인으로 ‘서울 선언’이 채택되면 국제사회는 문화의 세기를 위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예술은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상상력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감성과 창의력을 불어 넣는다. 예술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친다. 예술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한 중년의 퇴임식까지 비범하게 만든다. 예술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2010.05.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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